한국 패션계의 독보적 존재, 사진가 김용호. 지치지 않고 새로 운 영역을 개척해온 그는 40여 년간 끊임없이 변화를 주도한 예술가다. 그는 사진뿐 아니라 폭넓은 분야에서 자신만의 고 유한 시각언어를 창조하며 독자적 세계관을 구축해왔다. ‘그 누구와도 닮아서는 안 된다’라는 확고한 신념 아래 상업사진 에 순수 미술을 수용하며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비범하게 표현 했다. 그런 그가 인간 내면과 실존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스 스로 되묻고,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무중력 상태의 안식처인 ‘피안’을 사유하고 있다. 동시대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직감 적으로 느낀다는 이 시대 진정한 아티스트 김용호를 마주했다.
THANKS GIVING (이하 TG) 아티스트 김용호의 시선으로 발아된 작품은 사회의 통념을 불식한다. 당신의 선구자적 관 점은 어디에서 비롯했나?
김용호 상업사진의 근원은 순수예술이라고 믿는다. 그러니 상 업사진과 예술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. 세상을 흥미롭게 바라보고날선감각으로탐구하며통찰력있게표현하는것 이 내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여긴다. 지난 40여 년간 커머셜 작 업에 파인 아트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나의 호기심을 충족했 다. 고로 나는 예술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. 우리는 예술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 뉴욕현대미술관이나 퐁피두센터 보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, 국립현대미술 관에서 그 실마리를 찾지 않는가!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은 미래가 아닌 과거 유산에서 숨 쉬고 있다.
TG ‘진리를 깨닫고 이상의 경지로 이름’을 뜻하는 전시 ‘피안 (彼岸)’에서 연(Lotus)의 고결함을 표현한 연작을 발표했다. 당신의 시선이 연잎에 머물게 된 계기는?
김용호 10여 년 전 ‘조선 민화전’을 감상하다가 부처의 사랑과 군자의 고귀함을 상징하는 연에 탐닉하게 됐다. 풍요로움의 상징인 연은 다산과 복록, 장원급제, 부귀영화의 표식이다. 그 런 연은 비를 흠뻑 맞아도 젖지 않는다. 기품 있는 자태를 뽐내 며 빗방울을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담고 흘려보낸다. 이러한 연 유로조선의선비는마당에못을만들고연을심어연못을만 들었다. 특히 숙종은 창덕궁 후원에 정자를 새로 짓고 그 이름 마저 ‘애련정’이라고 지었다. 나는 우뚝 서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아니한 연을 응시하다가 문득 연지에 들어가야겠다 고 생각했다. 일단 무엇이든 새로워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 다. 따라서 그에 뒤따르는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. 누 구도시도하지않고누구도경험하지못한세계를나만의시 각적 언어와 공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.
TG 작품<연>은 물 밖이 아닌 물속에서 긴 호흡으로 연잎을 마 주한 작업이다. 당신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가?

 김용호 모든 사람은 연못가에서 연꽃을 내려다본다. ‘물속에 서 바라보는 연은 어떤 모습일까’라는 호기심이 나를 물속으 로 이끌었다. 수면을 경계로 두 세계가 나뉜 삶을 사는 연에 빗 대어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다. 나는 한때 국 내 최초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버였다. 수중 촬영에 호기 심이 발동해 도전해봤는데, 물속에서 극심한 패닉을 경험한 후한동안다이빙슈트를방치했다가연가시에생채기가나 는 바람에 다시금 꺼내 입었다. 한여름 무거운 잠수복을 입고 빽빽하게 들어찬 연대를 밀어내면서 푹푹 박히는 뻘밭을 걷 다가마음에드는풍경을발견하면그제야안심하고물에눕 는다. 시원한 물과 바람의 감촉이 나를 감싸는 순간 하늘과 땅,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감정이 밀려오며 지금까지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풍광을 목격하게 된다.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 이가 그린 셰익스피어<햄릿>의<오필리아>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꿈같은 세상을 만끽하며, 그러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상상해본다. 존재의 경계에서 잠시라도 다른 세 상의 내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피안의 세계인 것이다.
TG 사진작가이면서 시를 쓴다. 시각언어와 문자는 어찌 보면 대척점에 있는데, 두 가지 모두에 천착하는 까닭은? 김용호글을잘쓰지는못하지만간혹쓴다.소설을쓴적이있 고 시도 써봤다. 무언가 생각이 나면 기록부터 한다. 내 불면은 분명 머릿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한 편으로 그 불면이야말로 영감의 원천이다. 미처 무언가를 분 출하지못하고잠들었다가결국그의식이나의몸을깨울때 가 있다. 그럴 때면 벌떡 일어나 머릿속 그 무엇이 도망가기 전 에날필로써내려간다.작정하고‘글을써야지’해서쓰는게 아니다. 그저 자조 섞인 말을 찬찬히 기록하다 보면 어느새 정 리되고 해답을 찾는다. 그러다 보니 ‘피안의 세계’라는 말이 빛 을 보게 됐다.
것일지 모른다. 모던 보이를 동경하고 연못에 누워 피안의 세 계를꿈꾸며전세계실크로드를탐구하는정신이내가걸어 온 ‘길’이다.
TG 2013년에 발간한<모든 모던(Modeun Modern)>의 후속 집<모든 모던 월드(Modeun Modern World)>를 위해 2015 년 여름부터 1년여에 걸쳐 7개국 23개 도시의 '길'을 따라 총 8 만124컷의 사진을 찍었다.
TG 당신은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통해 고결한 삶에 대한 염원 을 표현한다. 지금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?
김용호 우리는 가속도가 붙은 시대에 살고 있다. 40년이 4년의 속도를 못 이긴다. 신문과 전시는 미디어 아트로 변모했고, 메 타버스와 NFT에 대한 관심과 걱정, 고민과 흥분이 공존한다. 최근 한 정보통신 기업에서 디지털을 이미지로 구현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. 인공지능(AI)과 빅 데이터(Big Data), 클라 우드(Cloud)를 상징하는 디지털 3요소 ‘ABC’를 시각적인 방 식으로 풀어야 하는 미션이었다.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할 뿐 이지 우리는 일상에서 ABC의 도움으로 살아간다. 휴대전화 로 전자메일을 보내고 앱을 이용해 택시도 탄다. 디지털 유토 피아가 인류의 편리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 아닐까! 이것이 작품명을 ‘아름다운 신세계(Beautiful New World)’로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.
TG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?
김용호 온몸으로 직감하고 있는 그것. 새로운 도전은 이미 시 작되었다.

김용호<모든 모던 월드>는 철학적 사유로 점철된 한 권의 사 진집이자 예술과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다. 여정은 현대자 동차의 해외 생산 공장을 촬영하면서 시작했다. 아시아와 유 럽, 미주로 뻗어 나간 공장을 둘러보며 나는 실크로드를 떠올 렸다. 이 책은 터키의 사원과 리우데자네이루의 니테로이 현 대미술관,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료시카와 카잔 성당 등 이 국적인 곳에서 마주한 낯선 감정을 진취적으로 표현한 나만의 포토 랭귀지다. 실크로드를 단지 물리적인 ‘길’로 설명하기에 는 부족하다. 그 ‘길’은 어쩌면 하나의 철학이며 태도를 말하는
TG 아티스트 김용호가 걸어온 길은 모던 그 자체다. 당대를 호령한 패션 사진의 대가이자 자신만의 독보적 색채로 대한민 국 남성 패션의 대명사로 기록된 ‘김용호스타일’은 어디에서 비롯했나?
김용호 독일어 ‘자이트가이스트(Zeitgeist)’, 즉 시대정신은 활 자그대로특정시대를풍미한감정과이념,사고의경향을의 미한다. 시대정신은 특정 시기에 고유한 속성을 보이며, 역사 나 철학에서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경우에 썼다. 나의 취향 이나 안목은 17세기 고전주의를 계승한 낭만주의, 1890년대 미술계의 멜랑콜리한 경향, 1930년대 모던 보이를 향한 동경, 1960년대 낙관주의 정신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전통과 역사 를 수용하는 태도 등으로 설명된다. 계몽사상가 볼테르도 역 사적 사건의 동인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대정신이 세상을 움직 이는 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!
      

Let’s create something valuable together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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