김용호 모든 사람은 연못가에서 연꽃을 내려다본다. ‘물속에 서 바라보는 연은 어떤 모습일까’라는 호기심이 나를 물속으 로 이끌었다. 수면을 경계로 두 세계가 나뉜 삶을 사는 연에 빗 대어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다. 나는 한때 국 내 최초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버였다. 수중 촬영에 호기 심이 발동해 도전해봤는데, 물속에서 극심한 패닉을 경험한 후한동안다이빙슈트를방치했다가연가시에생채기가나 는 바람에 다시금 꺼내 입었다. 한여름 무거운 잠수복을 입고 빽빽하게 들어찬 연대를 밀어내면서 푹푹 박히는 뻘밭을 걷 다가마음에드는풍경을발견하면그제야안심하고물에눕 는다. 시원한 물과 바람의 감촉이 나를 감싸는 순간 하늘과 땅,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감정이 밀려오며 지금까지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풍광을 목격하게 된다.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 이가 그린 셰익스피어<햄릿>의<오필리아>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꿈같은 세상을 만끽하며, 그러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상상해본다. 존재의 경계에서 잠시라도 다른 세 상의 내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피안의 세계인 것이다.
TG 사진작가이면서 시를 쓴다. 시각언어와 문자는 어찌 보면 대척점에 있는데, 두 가지 모두에 천착하는 까닭은? 김용호글을잘쓰지는못하지만간혹쓴다.소설을쓴적이있 고 시도 써봤다. 무언가 생각이 나면 기록부터 한다. 내 불면은 분명 머릿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한 편으로 그 불면이야말로 영감의 원천이다. 미처 무언가를 분 출하지못하고잠들었다가결국그의식이나의몸을깨울때 가 있다. 그럴 때면 벌떡 일어나 머릿속 그 무엇이 도망가기 전 에날필로써내려간다.작정하고‘글을써야지’해서쓰는게 아니다. 그저 자조 섞인 말을 찬찬히 기록하다 보면 어느새 정 리되고 해답을 찾는다. 그러다 보니 ‘피안의 세계’라는 말이 빛 을 보게 됐다.
것일지 모른다. 모던 보이를 동경하고 연못에 누워 피안의 세 계를꿈꾸며전세계실크로드를탐구하는정신이내가걸어 온 ‘길’이다.
TG 2013년에 발간한<모든 모던(Modeun Modern)>의 후속 집<모든 모던 월드(Modeun Modern World)>를 위해 2015 년 여름부터 1년여에 걸쳐 7개국 23개 도시의 '길'을 따라 총 8 만124컷의 사진을 찍었다.
TG 당신은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통해 고결한 삶에 대한 염원 을 표현한다. 지금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?
김용호 우리는 가속도가 붙은 시대에 살고 있다. 40년이 4년의 속도를 못 이긴다. 신문과 전시는 미디어 아트로 변모했고, 메 타버스와 NFT에 대한 관심과 걱정, 고민과 흥분이 공존한다. 최근 한 정보통신 기업에서 디지털을 이미지로 구현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. 인공지능(AI)과 빅 데이터(Big Data), 클라 우드(Cloud)를 상징하는 디지털 3요소 ‘ABC’를 시각적인 방 식으로 풀어야 하는 미션이었다.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할 뿐 이지 우리는 일상에서 ABC의 도움으로 살아간다. 휴대전화 로 전자메일을 보내고 앱을 이용해 택시도 탄다. 디지털 유토 피아가 인류의 편리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 아닐까! 이것이 작품명을 ‘아름다운 신세계(Beautiful New World)’로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.
TG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?
김용호 온몸으로 직감하고 있는 그것. 새로운 도전은 이미 시 작되었다.
김용호<모든 모던 월드>는 철학적 사유로 점철된 한 권의 사 진집이자 예술과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다. 여정은 현대자 동차의 해외 생산 공장을 촬영하면서 시작했다. 아시아와 유 럽, 미주로 뻗어 나간 공장을 둘러보며 나는 실크로드를 떠올 렸다. 이 책은 터키의 사원과 리우데자네이루의 니테로이 현 대미술관,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료시카와 카잔 성당 등 이 국적인 곳에서 마주한 낯선 감정을 진취적으로 표현한 나만의 포토 랭귀지다. 실크로드를 단지 물리적인 ‘길’로 설명하기에 는 부족하다. 그 ‘길’은 어쩌면 하나의 철학이며 태도를 말하는
TG 아티스트 김용호가 걸어온 길은 모던 그 자체다. 당대를 호령한 패션 사진의 대가이자 자신만의 독보적 색채로 대한민 국 남성 패션의 대명사로 기록된 ‘김용호스타일’은 어디에서 비롯했나?
김용호 독일어 ‘자이트가이스트(Zeitgeist)’, 즉 시대정신은 활 자그대로특정시대를풍미한감정과이념,사고의경향을의 미한다. 시대정신은 특정 시기에 고유한 속성을 보이며, 역사 나 철학에서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경우에 썼다. 나의 취향 이나 안목은 17세기 고전주의를 계승한 낭만주의, 1890년대 미술계의 멜랑콜리한 경향, 1930년대 모던 보이를 향한 동경, 1960년대 낙관주의 정신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전통과 역사 를 수용하는 태도 등으로 설명된다. 계몽사상가 볼테르도 역 사적 사건의 동인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대정신이 세상을 움직 이는 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!